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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가설(God Hypothesis)의 귀환Books 2022. 12. 20. 07:47
신 가설 (God Hypothesis)의 귀환
신 가설이 돌아왔다고? 도대체 신 가설 (혹은 하나님 존재 가설 )은 무엇이며, 책의 저자는 이 제목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지 궁금하다. 국내에서 이 책은 기독교 출판사인 부흥과 개혁사를 통해 번역 소개되었고 (서강대 소현수 교수 번역), 번역본의 제목은 기독교 출판사의 영향으로 ‘하나님 존재 가설의 귀환’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 책은 지적 설계론가 스티븐 마이어(Stephen Meyer)의 책으로 유신론적 관점을 견지하는 모든 이들과 공유가능한 입장이며, 무신론, 이신론자들에게 우주의 시작에 관한 증거가 어떻게 유신론을 지지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의 부제는 “Three scientific discoveries that reveal the mind behind the universe”, 즉 우주 너머의 지성의 존재를 보여주는 세가지 과학적 발견들이다. 마이어는 이미 지적설계론 관련된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고, 그의 대표적 저서라면, Signature in the Cell과 Darwin’s Doubt 두 권을 꼽을 수 있겠다. 그는 지적설계 이론의 본부라 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 연구소에서 Center for Science and Culture의 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전 작에서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에 필요한 유전 정보 (Signature in the Cell), 캄브리아 대폭발 시기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바디 플랜(body plan)에 필요한 유전 정보들이 한꺼번에 주어졌어야 함을 주목하면서 (Darwin’s Doubt), 이는 설계의 증거임을 역설한 바 있다. 이제 그는 우주의 역사를 거슬러 우주의 시작점, 우주의 시작이 있다는 과학적 발견이 가지는 함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신 가설?
과학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는, 과거에 많은 발전된 문명들이 있었지만 왜 유독 서구에서 근대 과학이 태동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무엇이 서구 문명으로 하여금 근대과학을 태동하게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많은 역사가들은 유대-기독교 전통을 그 이유로 들곤한다. 노벨 수상자인 멜빈 칼빈은 유일신 사상이 자연계에 단일하고 유기적인 질서를 기대하는 이유를 제공했으며, 이러한 질서의 유일신관이 근대과학의 역사적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예로, 과학 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버트 보일에게 있어서 과학은 자연에서 메커니즘을 찾고, 동시에 설계 (신이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유일신관이 근대 과학의 발흥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기독교 전통은 과학에서 쇠퇴하게 된 것이 오늘날 과학의 현 주소이다. 유대-기독교 전통의 신 가설은 근대 과학에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하였지만 과학은 신의 흔적을 지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마이어는 이제 그 신 가설이 다시 귀환할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주에 시작이 있다!?
유대-기독교 전통 관점에서는 무로부터의 창조 (ex nihilo)라는 분명한 시간상의 시작이 있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뉴턴 물리학이 우세했던 시기의 근대 과학에서는 무한한 우주, 무한한 시간의 개념이 받아들여졌었다. 과연 우주는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것인가? 아니면 우주에도 시작이 있는 것인가? 이 논쟁의 시작은 우주의 크기에 대한 논란에서 먼저 구체화되었다. 1920년대 천체물리학에서는 첨예한 논쟁거리는 해롤드 샤프리(Harold Shapley)와 헤버 커티스(Heber Curtis)간의 논쟁인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을 해결한 이가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이었는데, 다른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그 속도가 우리로부터 떨어져있는 거리와 비례한다는 내용이었고, 이는 바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중력 이론,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근거들은 빅뱅 이론의 근간이 되었다. 주요한 논쟁의 지점은 빅뱅이 함의하는 바였는데,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 시 공간의 시작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함의때문에, 당시에는 과학계의 상다한 저항이 있었다. 재미있는 일화는 아인슈타인이 처음에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관점을 거부했었다는 것이며, 심지어 그의 유명한 논문 “Cosmologocial considerations in 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에서 우주를 정적(static)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임의적인 상수를 갖다붙이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이에는 그 어떤 물리학적 정당성이 없는 내용이었고, 단지 그의 우주에 관한 철학적 이유 때문이었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근거에 설득당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에 이르른다. 이렇듯, 당시 과학계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우주의 시작이 있다는 것이 가져오는 철학적/신학적 함의 때문이었다. 우주의 존재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 가져올 철학적/신학적 함의, 즉 바로 그 시-공간을 가능하게한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마이어는 1985년 텍사스 달라스 (Dallas)에서 있었던 한 컨퍼런스를 회상한다. 세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현대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함의에 대해 스스럼없이 인정했던 유명한 컨퍼런스이기도 했다. 이 세명의 학자는 오웬 진저리치, 앨런 샌디지, 딘 캐년이다. 원시 수프 가설로 유명한 딘 캐년(Dean Kenyon)은 이 컨퍼런스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심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는데, 생화학 실험자가 이 과정을 유도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시뮬레이션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솔직했다. 하바드 대학의 천체물리학자였던 오웬 진저리치(Owen Gingerich)는 현대 우주론과 창조에 관한 성경기사 사이의 예상치 못한 수렴(convergence)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한 과학자는 허블의 대학원생이었고, 이후 허블의 일을 이어서 했던 과학자 앨런 샌디지(Allan Sandage)였는데, 진저리치와 샌디지 둘 다 ‘미세조율(Fine tuning)’을 언급했다. 이들은 우주의 시작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신존재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우주와 물리학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유신론에 대한 믿음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는 마이어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현대 과학적 발견이 유신론에 제공하는 인식론적 지지 (epistemic support)와 일맥 상통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가지론자였던 로버트 재스트로우(Robert Jastrow)의 “God and the Astronomers”의 한 단락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학자들은 대체로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들을 매우 반가워했다. 반면에 천문학자들은 신기하게도 매우 화가나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은 소위 객관적이어야할 법한 과학하는 이들의 재미있는 반응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학적 근거가 밝힌 내용이 그들의 신념과 충돌하게 될때의 반응 말이다. 실제로, 과학하는 이들도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그들의 신념과 새로운 발견들이 충돌할 때, 그들은 매우 불편해하거나, 충돌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척 행동하거나, 그런 발견들을 의미없는 것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우주의 시작에 필요한 물리학적 조건들과 미세조율(fine tuning, 혹은 미세조정), 인류원리
다양한 물리 상수들이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미세조율되었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우주상수, 우주의 팽창 속도, 최초의 생명체에 필요한 유정정보, 등등 모든 것이 생명 탄생을 위해 조율되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턴의 중력 방정식에서 물리 상수 G는 조금만 작아지면, 원자핵들이 결합하여 탄소와 산소 등 생물에 필요한 다양한 원소를 합성할 만큼 뜨거워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 상수 값이 조금이라도 커지게되면 핵합성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 수명이 긴 별이 생성되지 못하고, 태양계와 같은 생명에 적합한 장소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폴 데이비스는 자연의 상수 중 어느 것이라도 조금만 달라지면 우주가 완전히 혼돈에 빠질 것이라 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미세조율을 인류원리 (anthropic principle, 혹은 인간 중심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하다. 인류 원리는 호주의 이론 물리학자인 브랜든 카터(Brandon Carter)가 처음 소개한 내용으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서만 그것을 관측할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으므로, 관측되는 우주는 반드시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합리화는 논리적 오류가 있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설명함으로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의 인과적 설명 조차 필요없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크레이그와 같은 학자들이 토론에서 자주 드는 총살의 비유를 들어보자. 당신은 지금 총살당하기 직전의 순간에 놓여있다. 수많은 군인들이 바로 앞에서 당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총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신호가 떨어졌고 수십명의 군인이 당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하게도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고 어떻게 자신이 이 상황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의아해하고 있다. 이해할 법한 설명은 모든 군인이 전부 타겟을 놓친 것은 의도되어 사전에 협의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원리에 따르면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지 못했다면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없을테니 이 일은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여전히 어떻게 있을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느냐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수정된 자연신학의 도래
이는 우주의 시작에 대한 천체물리학적 근거와 미세조율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이 수정된 자연신학의 귀환을 예고한 것으로 본다. 마이어는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이 유신론으로 보다 더 자연스럽게 설명된다고 보았다. 그는 여기서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신존재 증명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그는 이러한 근거들이 유신론을 향한 인식론적 지지 (epistemic support)를 제공한다고 보았고, 무신론이나 이신론에 비해 보다 나은 설명력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같은 맥락으로 폴킹혼은 자연신학의 부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았고, 이러한 움직임은 신학자들 사이가 아니라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유사한 맥락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역시, 수정된 자연신학의 부활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는 그의 저서 ‘A Fine-tuned Universe’에서 페일리의 자연신학이 완전 폐기처분해야할 어떤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과거 자연신학이 신존재 증명으로 귀결되려했던 것에 반면, 수정된 자연신학은 신존재 증명이 아닌,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한다. 이는 크리스찬 지적 설계론가들이 (뎀스키가 그의 저서 ‘지적설계’에서 이야기했듯이) 설계의 근거들을 통해 유신론적 입장만이 가질 수 있는 인식적 지지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부연- 설계론가들은 예전부터 설계론이 자연신학의 신존재 증명이 아니라는 점을 수없이 강조해왔다).
지적 설계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
과학으로서 설계 이론은 검출 가능한 설계가 있을 수 있다는 과학적 가설을 바탕으로 세워진 과학 이론이다. 얼마만큼의 낮은 확률이면 지성의 개입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가는 충분히 과학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법이 생물학, 생화학을 넘어 물리학, 우주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해보려는 시도가 바로 현대의 지적설계론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이론과 그 이론이 가지는 함의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철학적/신학적 함의는 유신론에 인식적 지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신론에 매력적이다. 설계론에 대한 색안경을 내려놓고 (반-진화론이라는 오해), 우주, 지구, 생명에 대한 현대과학의 발견들이 유신론에 의해 더 잘 설명되는지, 무신론-자연주의 철학 혹은 이신론에 의해 설명되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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